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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rts of iron 2/ 프랑스 기병전차 Hotchkiss H39 > (ft, 페이퍼로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본문

서평

< hearts of iron 2/ 프랑스 기병전차 Hotchkiss H39 > (ft, 페이퍼로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나연아범 2024. 11. 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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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놀랄 만한 일이 거의 없었고 힘이 더 센 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세계대전이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게 싸우는 대결이었다.” - 본문 중에서 2차 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지금의 우리가 이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일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일본 종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이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일 관계에 놓여 있는 많은 문제들이 식민지배라는 큰 틀도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전시 총동원의 영향 아래 벌어진 일들이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으로 시작된 지난 70여년의 남북관계도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를 넘어서 중일관계, 미일관계 등 동북아 국제관계에도 제2차 세계대전과 종전처리의 영향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제정치사가가 쓴 전쟁사인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현재의 국제정치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나라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행동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바라본다. 군대들만이 아니라 나라들이 부딪치는 전쟁 수행의 정치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그렇게 전쟁이 진행된 결과로서 다시 나라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독일 문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해결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유럽 질서가 무너지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으며, 대전이 유럽 전쟁으로 끝나지 못하고 세계적인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참전하게 되고 전승국이 됨으로써 이후의 세계가 이 두 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 테일러의 큰 그림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큰 그림 안에서 영국과 프랑스, 특히 프랑스의 패배 이후 영국은 어떠한 전략을 구상했고 어떠한 행동으로 귀결되었는지, 반대편에서 히틀러는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해 나갔는지, 추축국의 공격을 당한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태평양에서 일본의 행동은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 서로 얽혀 있는 나라들의 관계에서 각 나라의 전략과 행동을 살펴본다. 테일러는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전략을 이끄는 데 군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고 이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도 컸던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 특히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 히틀러가 정치와 전략을 결정했다고 분석한다. 제1차 세계대전 말에 프랑스 수상이 되어 전쟁을 마무리한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 중대한 일이라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결과뿐 아니라 전쟁 자체가 온 나라, 모든 국민들의 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중들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했고 이들 지도자들만이 대중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었다고 테일러는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전쟁이 내건 외면적 명분보다는 이들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지도자, 정치인, 지휘관, 외교관 및 그 외 많은 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하여 치밀하게 분석한다. 전쟁 발발 위험에 대한 히틀러의 오판과 과신,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어난 사건의 규모에 끌려 다닌 연합국의 사람들의 신념과 실패가 책 전체에 걸쳐 흥미롭게 서술되며, ‘전쟁은 독재자들의 사악함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실수에도 기인’하며, ‘그릇된 신념만큼이나 바른 신념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역사의 오랜 진리를 다시 우리 앞에 드러낸다. 한편, 전쟁은 테일러의 말을 빌리면 ‘부족한 정보 속에서 각자 최선을 다한 결과’ 벌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 최선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는 역사의 의문으로 남지만 말이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국가였던 연합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에 2차 대전 최대의 사망자를 내며 독일을 막아냈던 소련을 자기네 편으로 받아들이기를 마지막까지 주저했다. 전쟁 기간과 전쟁 이후를 통틀어 이들 국가들은 독일보다 러시아를 더욱 더 적대시했다. 이러한 편견의 반대편에서, 소련은 오직 강대국으로 복귀하려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의 오해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3의 세계 전쟁을 예고하는 이 극단적인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부터 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태로 전환해버렸다. 양 진영 모두가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한 시기는 종전 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70년대에 들어서였다. 결국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그것이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는 평화 없는 전쟁의 결과에 낙담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테일러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평화는 제2차 세계대전의 목적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의 압제로부터, 그리고 좀 더 작은 부분이지만 일본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아무리 큰 희생을 치렀다 할지라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나의 성공이 따랐으면, 그 뒤 새로운 성공을 끌어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며, 그런 의미에서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다음 세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른 전쟁과 다름없는 또 다른 전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어낸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목적 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고 그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저자
A J P 테일러
출판
페이퍼로드
출판일
2020.10.16

Hotchkiss H39는 프랑스의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경전차로, Hotchkiss H35의 개량형으로 개발되었다. H39는 H35의 느린 속도와 제한적인 화력을 보완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된 모델로, 더 강력한 엔진과 개량된 화력을 갖추고 있어 H35의 약점을 일부 개선했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으며, 독일의 프랑스 침공 전인 1940년까지 약 1,200대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차는 프랑스 전투 중 프랑스군의 주요 전력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Hotchkiss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군수산업을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로,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여러 해외 군대에도 무기와 차량을 공급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기관총과 경전차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에도 그 기술과 제품이 독일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Hotchkiss는 전후 군수산업에서 상용차 제조로의 전환을 꾀했지만, 결국 산업 구조의 변화와 경쟁 심화로 해체되었다.

Hotchkiss H39의 설계와 특징

1. 무게와 기동성

H39의 무게는 약 12.1톤으로, 이전 모델인 H35에 비해 약간 증가했다. 엔진 출력이 증가하면서 최고 속도가 약 36~40km/h에 도달해 기동성 면에서 향상된 성능을 보여주었고, 이는 보다 효과적인 전술적 운용을 가능하게 했다.

https://youtu.be/sxEm48xFnE8?si=ZGUjEFw6xitvxTsN

 

2. 무장

  • 주무장: 초기 모델의 경우 37mm SA 18 포가 장착되었지만, H39 후기에 생산된 모델은 더 강력한 37mm SA 38 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SA 38 포는 SA 18보다 관통력이 높아져 독일군 전차에 대한 대항력이 강화되었다.
  • 보조무장: 7.5mm 동축 기관총이 장착되어 보병과의 교전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3. 장갑

H39는 전면 장갑 두께가 약 40mm에 이르러 당시 경전차 치고는 비교적 높은 방어력을 갖췄다. 그러나 측면과 후면 장갑은 상대적으로 얇아 적의 측면 공격에 취약한 점이 있었다. 이러한 방어력은 소형 전차로서 방어적인 면을 보완하기 위한 설계였지만, 중전차와의 교전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4. 엔진

H39는 기존 H35에 비해 더 강력한 120마력의 Hotchkiss 엔진을 장착했다. 이는 H35에 비해 기동성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특히 프랑스 내의 다양한 지형에서 보다 신속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5. 통신 장비

일부 H39 전차는 무전기를 장착했지만, 대부분의 전차는 무전기가 없어서 전차 간 통신이 제한되었다. 이는 프랑스군 전차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전술적 유연성과 부대 간의 협력에 제약이 생기게 했다.

https://youtu.be/sudmL3Qlrb0?si=-v_PTcEvow1u9iZ2

 

실전 운용과 성능 평가

1. 프랑스 전투 (1940년)

H39는 프랑스 전투에서 독일군의 기갑 부대와 맞서 싸웠다. H39는 주로 보병 지원 및 경비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때때로 독일군의 전차와 교전했다. H39의 업그레이드된 37mm SA 38 포는 일부 독일 전차에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으나, 속도와 통신의 제한으로 인해 독일군의 기동전에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 독일군의 노획 및 개조

프랑스 전투 이후 상당수의 H39가 독일군에게 노획되었다. 독일군은 노획한 H39를 "Panzerkampfwagen 38H 735(f)"라는 명칭으로 분류했으며, 점령지에서 경비와 훈련 용도로 사용하거나 일부를 개조하여 지원 전차로 운용했다. 또한, H39의 일부는 독일군에 의해 화염방사기 장착 차량으로 개조되어 요새 공격 등 특수 임무에 사용되기도 했다.

3. 전후 평가

Hotchkiss H39는 경전차로서 비교적 우수한 방어력과 개선된 화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전술적 유연성과 통신의 한계로 인해 독일군의 기동전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경전차 특유의 낮은 화력은 중무장한 독일 전차에 비해 열세였으며, 이런 점에서 프랑스군이 독일군의 Blitzkrieg 전술을 막아내기 어려웠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후속 개발 및 운용

프랑스가 패망한 이후, 프랑스 레지스탕스 및 자유 프랑스군(French Forces of the Interior)에서도 H39를 소수 운용했습니다. 이 전차는 1944년 연합군이 프랑스를 해방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 독일군에게 노획된 후 유럽 전역에 배치되어 다양한 임무에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동부 전선에서도 독일군에 의해 운용되었다.

Hotchkiss H39의 역사적 의의

Hotchkiss H39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프랑스의 방어와 기갑 전력 증강의 일환으로 개발된 전차 중 하나이다. 당시 프랑스군이 독일군의 Blitzkrieg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H39는 당시 프랑스 기갑 전력의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H39는 독일군에 의해 재활용되어 다수의 노획 전차가 다양한 역할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에서 의미 있는 기갑 차량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2차 세계 대전 참상을 잘 서술한 책이 있다.  페이퍼 로드 출판사의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사가가 쓴 제2차 세계대전사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정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나라들의 관계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조망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습니다. 전쟁을 단순히 군사적인 관점이 아닌, 각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와 전략을 통해 바라보며 전쟁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다.

https://link.coupang.com/a/bZNSyt

책은 19세기 후반 독일의 부상과 이에 따른 유럽의 정치적 불안정을 설명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음을 강조한다. 독일 문제는 결국 유럽 질서를 뒤흔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으며, 유럽의 전쟁이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의 참전으로 확대되어 전 세계적인 전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은 전쟁의 승자로 떠올라 이후 세계 질서의 중심 국가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전쟁 이후의 세계는 이 두 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https://youtu.be/wANkJaqSpBg?si=l4qLCBdTv39rRIij

저자인 테일러는 이와 같은 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유럽 주요국들의 전략을 세부적으로 살펴본다. 프랑스 패배 이후 영국이 선택한 전략과 그로 인한 행동, 히틀러가 상황을 인식하고 독일의 전쟁 수행 방식을 결정해 나가는 과정, 일본의 태평양에서의 행동이 미국 및 유럽 국가들에 미친 영향,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가 각자의 전략적 판단을 어떻게 내렸는지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저자는 서로 얽힌 국가 관계를 분석하여 각 나라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판단이 전쟁의 결과와 전후 세계 재편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단순히 군대 간의 전투가 아닌, 각국의 정치적 전략과 그 결과로서 세계 질서가 형성된 과정임을 조명하며 오늘날 국제 정치의 근본적 이해를 돕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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