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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아범의 산업보건이야기
< hearts of iron 2/ 프랑스 공군 DEWOTINE D.520 > (ft, 까치 출판사 이상한 패배) 본문
수많은 생각 중에 가장 이해가 안가는 부문은 왜 2차세계 대전 개전 시 왜 프랑스군은 독일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졌을까 ?
라는 생각이다. 만약 프랑스가 전황을 냉정히 바라보고 이 상쪼황을 타개했을 생각이 있었다면 일부 전력을 아프리카령 프랑스 식민지 즉 적도 이남 콩고나 마다카르쪽으로 분배했다면 전력을 분배했다면 상황은 많이 변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천년고도 프랑스 파리를 떠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들이 믿었던 철통같은 마지노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프랑스가 2차 세계 대전 전에 아프리카에서 차지한 식민지 중 섬인 마다가스카를 제외한 지역은 아프리카 내륙에서는 푸랭트누아르지역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프리카 푸랭트누아르"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도시인 푸앵트누아르 (Pointe-Noire)를 가리키킨다. 이 도시는 오늘날 콩고 공화국의 주요 항구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푸앵트누아르는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로서 아프리카의 중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보급 지점이었다. 당시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는 자유 프랑스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은 이곳을 물자 및 병력 수송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특히 푸앵트누아르의 항구는 아프리카의 여러 다른 식민지와 유럽, 미국 간의 군사 물자와 자원을 이동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당시 프랑스 수뇌부가 만약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바로 이곳에 제 2의 프랑스를 만들었으면 분명히 전쟁의 판도는 바뀌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프랑스도 2차 세계 대전 당시 준수한 공군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DEWOTINE D.520 모델의 경우
드와틴 D.520(Dewoitine D.520)은 프랑스의 전투기 디자이너인 에밀 드와틴(Émile Dewoitine)이 설계한 프랑스 전투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공군의 주요 전투기 중 하나였다.
이 기체는 1936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39년에 실전 배치되었으며, 당시 프랑스가 가진 전투기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기종이었다. D.520은 속도, 기동성, 그리고 무장 면에서 독일 공군의 Bf 109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성능을 보여주었고, 특히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D.520은 12기통 Hispano-Suiza 12Y-45 엔진을 탑재해 최고 시속 약 530km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프랑스 전투기 중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했다. 주 무장으로 20mm Hispano-Suiza HS.404 기관포 1문을 프로펠러 중심에 장착했고, 날개에는 7.5mm MAC 1934 기관총 4문을 추가로 장착해 화력이 강력했다.D.520은 기동성이 뛰어나 저고도 및 중고도에서 특히 유리했다. 다만, 고고도 성능 면에서는 다소 약점이 있었고, 당시 독일의 Bf 109에 비해 상승 속도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
https://youtu.be/1K3jlPszPA0?si=VUAxQG_-Px-TjDHD
D.520은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로 활약했다.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후, 비시 프랑스 정부에서도 D.520을 일부 사용하였으며, 독일군은 프랑스를 점령한 이후 이 전투기를 노획하여 훈련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D.520은 프랑스 공군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전투기였으며, 이후 전쟁 중 일부 자유 프랑스군에도 배치되었다.
https://youtu.be/gax_u6MbcHg?si=F3zel2a9YlnPEGMY
ㅇㅇ이상한 패배수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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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적의 명가 까치 글방에서도 2차 세계전 프랑스 상황에 대한 냉정한 시점에서 작성한 책을 발간을 하였다.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은 20세기 역사학에 큰 업적을 남긴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으로,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에 빠르게 패배한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블로크는 역사학자로서 프랑스의 패배를 단순한 군사적 요인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문제들이 얽힌 복합적 원인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참전했던 1940년 5월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사회와 정부의 관료주의, 정치적 무능함, 그리고 지식인들의 무기력함이 패배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블로크는 이 책에서 프랑스의 패배를 ‘이상한’ 것으로 표현하며, 이는 단순한 전술 실패가 아니라 더 깊이 뿌리박힌 사회적, 제도적 문제로 인한 패배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분석은 단순한 전쟁 기록을 넘어서, 프랑스 사회 전체를 향한 비판적 통찰이 담긴 역사서로 자리 잡았다.
또한 블로크는 전쟁 후에도 현실 참여적인 역사가로서의 사명을 이어갔다. 그는 나치 점령 하에서도 레지스탕스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끝내 1944년 나치 친위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블로크의 책은 단순히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역사가로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현실 참여적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1940년의 증언”이라는 부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한 블로크가 후세를 위해 남긴 피의 증언임을 나타내며, 그가 경험한 절망과 저항의 기록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패배는 현재 한국에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프랑스는 당시 유럽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시대적 변화에 맞지 않는 군사 전략과 관료주의적 태도, 그리고 분열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독일의 급속한 진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하고 빠르게 패배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재 한국이 안보와 외교, 내부 결속 면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패배 원인 중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술에 기반한 방어 전략과 최신 전술에 적응하지 못한 점이었다. 프랑스는 마지노선과 같은 고정 방어선에 의존했으나, 독일은 새로운 기동전술을 이용해 빠르게 프랑스의 방어를 돌파했다. 오늘날 한국도 빠르게 변화하는 군사 기술과 사이버전, 드론전 등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하고 혁신적인 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패배에는 정치적 분열과 내부 갈등도 큰 역할을 했다.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로 인해 효과적인 국가 안보 대처와 결속이 부족했다. 오늘날 한국도 외부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단합하는 문화와 협력적 정책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교적 압박이 많으므로,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프랑스는 독일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현실적 외교 전략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도 주변 강대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외교 정책을 실용적이고 유연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낙관이나 한쪽에 의존하는 외교는 위험할 수 있으며, 다각적인 외교 노선을 통해 국가의 주권과 안보를 지켜나가야 한다.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일부 지역에서 저항 의지가 부족한 모습도 보였고, 이후 레지스탕스가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한국도 시민들의 안보의식과 국가 수호 의지를 지속적으로 고취할 필요가 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시민과 군대가 일치단결해 대응하는 것이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이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패배는 전술적 유연성과 내부 결속, 실용적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한국이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적이고 강력한 국가 전략을 구축한다면 외부 위협에도 안정적인 안보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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