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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아범의 산업보건이야기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 그가 소련군에게 한말은 ? 본문
- 평점
- 8.9 (2015.02.26 개봉)
-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출연
- 존 론, 조안 첸, 피터 오툴, 루오청 잉, 빅터 왕, 타카마츠 히데오, 데니스 던, 사카모토 류이치, 매기 한, 릭 영, 비비안 우, 캐리 히로유키 타카와, 제이드 고, 이케다 후미히코, 리차드 부우, 초우 타이거, 오도, 헨리 오
- 저자
- 옌 총리엔
- 출판
- 산수야
- 출판일
- 2025.03.05
가상 단편 : 만주국의 마지막 날
1945년 8월 18일, 신징(長春), 만주국 황궁
(황궁 안, 푸이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있다. 창밖에서는 일본군과 만주국 관리들이 혼란에 빠져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다.)
요시코(일본군 장교): "폐하!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됩니다. 소련군이 신징까지 진격하고 있습니다!"
푸이(초조하게): "정말 일본으로 갈 비행기가 준비된 건가?"
요시코: "예! 지금 공항으로 가시면 일본으로 가는 항공기가 있습니다. 어서 가시죠!"
(푸이는 하인들과 함께 황궁을 떠나 자동차에 오른다. 창밖으로 불타는 거리와 도망치는 병사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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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징 공항, 격납고 근처
(공항은 아수라장이다. 일본 장교들과 만주국 관리들이 필사적으로 비행기에 타려 하고 있다. 푸이는 호위병들과 함께 비행기로 향한다.)
만주국 관리: "폐하! 저희도 함께 가야 합니다!"
푸이(흔들리는 목소리로): "나도 안전하지 않은데…."
(그 순간, 공항 위로 소련군 전투기가 나타나 기총소사를 퍼붓는다. 비행장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진다.)
요시코: "폐하! 뛰십시오!"
(푸이는 필사적으로 비행기로 달려가지만, 이미 소련군 탱크가 활주로를 막고 있다. 일본 조종사는 손을 흔들며 외친다.)
조종사: "이미 늦었습니다! 이륙할 수 없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탱크 소리. 소련군 병사들이 기관총을 겨누며 다가온다.)
소련군 장교: "황제 푸이! 당신은 포로다!"
(푸이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자신이 믿었던 일본은 사라졌고, 황제로서의 삶도 끝났다. 그리고 그는 읊조린다. " 난 일본인이라고" 그는 천천히 손을 든다.)
위의 글은 가상의 글입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1906~1967)는 제국의 황제로 등극했으나 퇴위했고, 이후에도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로 복위했다가 다시 몰락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서, 중국 근현대사의 격변과 일본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일본 대중은 푸이의 황제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만주국 황제 시절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그가 전범으로 재판을 받은 후 공산 중국의 시민으로 살아간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푸이는 원래 황태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의 황제인 광서제(光緒帝)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친형이었던 순친왕(醇親王)의 아들 푸이가 즉위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자희 태후(慈禧太后)는 광서제를 견제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을 황제로 세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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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희 태후는 광서제를 사실상 유폐시키고 1908년, 광서제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 그의 조카인 푸이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당시 푸이는 겨우 2살이었으며, 실질적인 정치는 자희 태후와 섭정왕들이 맡게 되었다. 하지만 자희태후 또한 광서제 사망 다음 날 세상을 떠나면서, 푸이의 운명은 더욱 불확실해졌다.푸이의 즉위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결국 청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혁명의 불길은 이미 타오르고 있었고,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년)이 일어나면서 황실은 더 이상 제국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1912년, 신해혁명의 지도자였던 쑨원(孫文)은 중화민국을 세우고 초대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힘을 빌려 청 황실을 해체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고, 그 결과 푸이는 공식적으로 퇴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푸이는 단순한 폐위된 군주가 아니라, 조건부 퇴위를 한 것이었다. "청실 우대조건(清室優待條件)"이라는 협약에 따라 그는 여전히 황제의 지위를 일부 인정받았고, 자금성에 거주하며 제사를 올리는 등 상징적인 황제로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화정부와의 갈등이 커졌고, 결국 1924년 펑위샹(馮玉祥) 군벌이 베이징을 장악하면서 푸이는 자금성에서 쫓겨났다.
1917년, 군벌 장훈(張勛)은 청나라의 부활을 외치며 군대를 이끌고 베이징을 점령했다. 그는 푸이를 다시 황제 자리에 앉혔지만, 이 시도는 불과 12일 만에 실패했다. 공화파 세력의 반격으로 장훈은 도망쳤고, 푸이는 다시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이후 푸이는 황제로 복위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1920년대 말 일본과 접촉하며 자신을 다시 군주로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면서, 푸이는 또 한 번 황제로 등극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32년, 일본 관동군은 만주국(滿洲國)을 수립하고 푸이를 국원(國元)으로 세웠다. 1934년, 그는 "강덕제(康德帝)"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황제로 즉위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푸이는 자신이 진정한 황제라고 믿고 싶어 했지만, 일본의 정책과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군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만주국은 더욱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로 전락했고, 푸이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일본이 패망한 1945년, 푸이는 일본으로 탈출하려 했으나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나는 일본인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도쿄로 가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일화는 후세에게 푸이와 일본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소련에 의해 체포된 푸이는 시베리아로 끌려갔다가 1950년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그를 전범으로 간주했고, 푸이는 전범 재판에서 자신이 일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으며 잘못을 인정한다고 증언했다.그는 10년 동안 감옥에서 "사상 개조"를 받으며 농사일을 하고, 공산주의 이념 교육을 받았다. 과거 황제였던 그가 감옥에서 동료 죄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변화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1960년, 푸이는 특별 사면을 받고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는 공산 중국의 일반 시민(공민)으로 살아가며 정원사로 일했다. 한때 제국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중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이후 중국 인민 정치 협상 회의(政協)의 의원이 되어 정부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1967년,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이처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삶은 청나라의 흥망성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만주족을 통합하고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켜 청나라를 건국했다. 강희제(재위 1661~1735), 건륭제(재위 1735~1796) 시기에 청나라는 경제적·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되었고,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이들은 한족 문화를 포용하면서도 만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었다.
19세기 들어 청나라는 서양 열강과의 충돌 속에서 점차 힘을 잃었다. 도광제(재위 1820~1842)으로 홍콩을 잃었고, 태평천국 운동(1851~1908) 시기에는 변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1900년 의화단 운동과 1901년 신축 조약으로 청나라는 사실상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함께
청나라 황제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하고 다민족 통합 정책을 추진했으며, 한족 문화와 만주족 전통을 융합하여 독특한 통치 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근대화에 실패했고, 결국 중국이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침략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푸이의 몰락은 황제 중심의 전통적 중국이 끝나고 현대 중국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했다.
이러한 마지막 황제 푸이 이야기와 함께 이번 출판사 <산수야>에서
2025년에 나온 개정 2판 <청나라 제국 황제들>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몇 가지 맥락을 통해 난 다른 이에게도 권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청나라는 이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중국 최후의 봉건 왕조로, 268년간 번영과 쇠퇴를 겪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은 이 과정에서 황제들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위기를 극복하려 했는지를 조명한다. 이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변을 겪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청나라 황제들은 강력한 리더십과 개혁 의지로 국정을 운영하며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강희제와 건륭제는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키고 영토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고 구체제에 안주한 도광제 이후 청나라는 내부 부패와 외세의 침략 속에서 급격히 쇠퇴했다. 이는 지도자의 결단과 개혁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대한민국 역시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국민과 지도층이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 방식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과의 충돌에서 실패하며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 이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결과였고, 현대 대한민국 사회도 글로벌 정세 속에서 현명한 외교와 경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민심을 얻지 못한 정권은 모래성과 같다. 청나라는 백성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고, 결국 신해혁명으로 황제가 퇴위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치가 이루어질 때만이 국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간 사람들은 서로들을 보며 내란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혼돈에 난『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이란 책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지도자의 결단,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청나라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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