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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아범의 산업보건이야기
나혜석(羅蕙錫)을 아시나요? (ft,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한겨레출판) 본문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이자, 작가였다
서양화가 그리고 문필가의 삶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20세기 초 여성 해방운동과 성 평등에 대한 논쟁적 주제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혜석은 일생 동안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 페미니스트, 사회적 논객으로서도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서당을 업으로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부터 학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1913년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여자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해 미술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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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녀는 일본의 서양 미술과 함께 다양한 사상과 문학적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예술적 방향을 결정지었다.
나혜석은 서양화를 공부하며 당시 유럽 미술의 흐름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다. 그녀는 1915년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와 풍경화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사실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대표작으로는 '자화상', '영의정 박영효', '정원을 거닐며', '가을의 들판'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여성의 감정과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사회의 억압적인 틀에서 깰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그녀는 또한 여성 예술가로서 겪는 사회적 제약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작품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의 내면과 자유에 대한 탐구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특히 자화상을 통해 자아를 직시하는 작품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겪는 갈등과 자기표현의 욕구를 담아냈다.
나혜석은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녀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914년 발표한 단편소설 '경희'는 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다룬 작품으로,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https://youtu.be/VuHr0OdGFjg?si=wqqMrLQB3Lnh1pdy
이 소설은 여성이 단순히 가족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는 이후에도 다양한 논문과 에세이를 통해 여성 해방, 성 평등, 자유연애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 특히 1920년대에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글에서 나혜석은 자신의 이혼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이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대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나혜석은 이로 인해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혜석은 예술가와 작가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여성의 권리와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힘썼다. 그녀는 1920년대 후반부터 여성 단체인 조선여자 교육 협회, 근우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교육과 사회적 권리 신장에 앞장섰다.
또한 그녀는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여러 강연과 집회에 참여하여, 여성이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도 평등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일제 감정기 시대에 주장하였다.
나혜석은 당시 여성에게 강요된 전통적 역할을 비판하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입장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나혜석은 이로 인해 많은 비판과 사회적 억압을 경험했다. 특히 자유연애와 여성의 성적 자유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많은 반감을 샀다.
https://youtu.be/rcN6J3ln8w0?si=Z5wENuHc32DRKMRp
나혜석의 세계여행은 그녀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예술과 사상, 그리고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혜석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세계 여행을 했으며, 이 기간 동안 서양 문물을 직접 접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사회적 인식을 변화 시켰다.
1927년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이 일본 영사관의 직책으로 파리로 발령받자 그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나혜석에게 이 여행은 단순한 동반자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세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당시 나혜석은 이미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으며, 이번 여행을 통해 서양의 예술적 흐름과 문화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경계를 넓히려는 의도가 강했다.
나혜석은 남편과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서양의 미술과 문화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며 당시 유럽의 예술적 중심지인 파리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서양의 현대 미술과 다양한 예술 사조를 접했다.
이때 그녀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미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혜석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여행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그렸다.
또한 나혜석은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예술과 문화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방식을 목격했다.
유럽의 여성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회 활동을 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혜석은 자신의 여성 해방에 대한 생각을 더욱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유럽을 여행한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방문했다. 미국에서의 경험 역시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서구 사회의 발전과 현대화된 문물을 목격한 나혜석은 한국의 낙후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나혜석은 소르본 대학에서 청강을 하며 서양 철학과 사상에 대해 배웠다. 그녀는 서양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여성 해방 사상 등을 접하며 자신의 사상적 지평을 넓혔다. 이러한 경험은 나혜석이 이후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와 성적 자유, 독립을 주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나혜석은 서구의 예술과 문학이 개인의 감정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러한 방식으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이 시기의 나혜석 작품에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나혜석의 세계 여행은 그녀의 예술적, 사상적 성숙을 가져왔지만, 그녀의 개인적 삶에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여행 중에 중국 상하이에서 동료 최린과의 연애 사건이 발생하면서 나혜석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1929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그녀는 이 사건으로 인해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게 되었다.
나혜석의 세계여행은 그녀에게 예술적, 사상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안겨주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삶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서양 문물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또한 이 여행은 그녀가 여성 해방과 성적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일제 제국주의 시절 나혜석의 삶은 그 당시 일반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기회가 부여되어 이렇게 역사에 남을 소재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나혜석 외 다른 인물도 역사 속의 3차원적 인물로 서술한 책이 있다.
그 책은 조현근 선생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한겨레출판>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한다. 이 책에서는 이 시대는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라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이 시기의 대륙을 넘나드는 동시대 인물들의 크로스웍을 통해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동시다발적인 역사적인 서술 이어지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제국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개인의 감정, 사고 체계, 그리고 욕망과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이 책은 역사적 사건을 국가와 민족의 중심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집중한다.
각 인물들의 삶이 연결되고, 그 연결의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 책의 저자는 큰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역사가 일방적으로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다시 역사를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은 다차원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만, 그 시대의 역사적 유물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지도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당대 인물들이 형성한 사고 체계와 감수성이 오늘날에도 깊숙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시대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나 인종적 편견이 현대 사회의 구조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이 책은 개인의 내면적 동기와 감정, 그들의 일상적 선택과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랑, 실수, 욕망, 좌절과 같은 인간적 경험들이 그 시대의 역사적 구조와 맞물려 어떻게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있어
역사에 대한 책임 연대주의를 각인시킨다.
역사라는 틀 속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는지, 그리고 현대의 독자들이 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라는 부채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함께 살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역사와 그 연루된 책임을 깊이 탐구하며, 현대의 독자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을 느끼게 끔한다.
결국, 이 책은 제국주의 시대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나열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삶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현대인들에게 책임을 묻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두세 번 아니 서너 번 정도의 반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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