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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 / 몽당연필 본문

서평

독후감 /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 / 몽당연필

나연아범 2024. 12. 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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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1950-1955
이 책은 평범했던 한 일본인 교사 카지이 노보루가 ‘암흑기’ 또는 ‘공립조선인학교 시기’라고 부르는 6년간 재일조선인들과 함께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냈는지 절절하고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으며, 한·일 간의 풀리지 않는 역사의 실타래를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신선한 대안이 될 이야기다.
저자
카지이 노보루
출판
몽당연필
출판일
2023.11.11






1948년 2월 28일,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在日朝鮮人)들은 일본 문부성(文部省)과 미 군정이 협력하여 조선인 민족 학교를 폐쇄하고 조선인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일본 공립 조선인 학교로 강제 전학시키고 조선인 학교들을 패쇄시킨 것에 분노하여 한신 교육 투쟁( 阪神教育闘争)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많은 조선인 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이며 재일 조선인 사회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특히 한신(阪神) 지역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크게 부각이 되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무장 경찰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조선 민족에게서 일제 강점기(日本帝國時代) 부터 민족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역사적 자각을 확립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 말을 배우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교육이 사라지고, 일본의 가치관이 내포된 교육이 강제 된다는 사실은 조선인들 에게 있어 받아들일 수 없는 탄압이었고 반드시 투쟁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평범한 새내기 교사 일본인인 노보루는 월급이 3호봉이 오른다는 이유와 자신도 가난하게 살아왔으니 조선인에 대한 가련한 마음 아니면 단순한 동정심으로 젊은 혈기로 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공립 학교에 전근을 오게 된다. 처음 학교에 도착했을 때, 노보루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조선인 학생들은 교원들을 일본 문부성에서 보낸 스파이로 여겼고 "달아매기"라는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 교원들의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반목의 감정으로 조선인 학교는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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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립 학교 교사들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고, 학생들은 대부분 조선인 이었지만, 조선어를 못하는 일본인 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조선인 학생들의 반목이 큰 상황이었지만 노보루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읽히는 반감은 여타 다른 일본인 교사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당시 조선인 학생 입장에서 일본인 교사들에게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무시 당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러한 억압은 그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노보루가 교감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였다. 노보루는 처음으로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때 나는 비로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노보루의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의 수업시간을 위해 조선어 교본을 만들며 노조에 가입하여 기존 권위적인 일본인 교원의 압박 그리고 일본 공권력 그리고 미군정의 일반적인 공산주의자로 학생들을 매도해가는 상황에서 중앙 교권에 목소리를 내어 현 상황을 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바꾸어 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나 노보루의 노력에도 일본 경찰들은 3000여 명의 인원으로 당시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으로 공산권과 대립하는 사이 무단으로 도립 조선인 학교에 침입하여 조선인 학생 그리고 일반 기자 그리고 교원, 의료진까지 탄압을 하는 사태가 터지고 만다. 노보루 역시 이런 사태를 겪으며 단순히 일본 정부의 조선인 탄압으로 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노보루와 뜻을 같이하는 조합 일원들은 조선인 학생들이 일본 사회에서 교육 받기 위한 작은 변화를 위해서 일본 중앙 교원 협회와도 연대 등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노보루의 이러한 행동은 친 정부 성향의 일본인 교원들과 계속적인 감찰하는 경찰 당국으로부터 외면과 감시를 당하게 된다. 노보루의 의도는 그들에게 억지로 일본 식 교육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노보루는 교사로서, 그들에게 단지 일본의 제국주의 잔재를 주입하는 것 이상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51년-52년 걸쳐 미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코 조약( San Francisco Treaty)을 통하여 일본과 연합군의 전쟁 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미 군정하에 점령 상태에서 공식적으로 주권국으로 복권되고 일본은 조약에서 쿠릴 열도(Kuril Islands.) 타이완(taiwan), 사할린(Sakhalin) 등을 포함한 여러 영토를 포기했고. 조약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일본은 과거의 식민지 및 점령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야 해야 했다. 그 더 이상 일본 내에 있던 식민지 주민이었던 아니 일본 국민이었던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일본 내 교육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 초 일본 당국의 조선인 학교 탄압은 의도치 않는 교육에 대한 정책적 불필요성을 줄이고 전후 새로 세워진 일본의 체제에서 순응할 조선인들은 그들의 편견을 딛고 일본 교육체제에서 순응하고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 남북 전쟁 후 남과 북의 새로 새워진 각 독립국가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일본 당국 위정자들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일본 문부성과 미 군정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동화'를 통한 일본 교육정책에 대한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목표로 했지만 노보루와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교사들은 일본에 남아 삶을 구현하던 조선인 학생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보루 혼자만의 힘으로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불안한 고용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삶도 버거운 조선인 교사들과 노조에 소속되어 있는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 교사들의 단합된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재일 조선인의 민족교육을 일본 제도하에 도립이라는 명목하에 1940년 말부터 50년 초까지 진행한 것은 결국 도립체제라는 중간 전환 과정을 통해 결국 조선인 학교의 사립화를 최종 목표를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사립화를 통한 일본 내 조선인들의 교육을 더 발전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일본이 미 군정하에 지배에 있었던 비정상적인 상황하에서 미 군정이 동일한 지역 그리고 동일한 시대에 있었던 약 10만 명 가량의 조선인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도립이라는 형태를 취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조약 이후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을 종료함으로써 사립이라는 허울 좋은 테두리에 조선인 학생들의 교육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러한 도립 조선인 학교의 폐교는 당연한 조선인 교원들의 직업적인 안정감을 박탈 당하고 그 이후의 삶이 힘들어진 것이 당연하지만 도립 조선인 학교의 조선인 교사와 뜻을 같이 했던 일본인 교사들에게도 단지 조선인 학교에 근무했다는 이유는 개인 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그리고 학교 폐교 후 일본인 교사들의 직업의 안정성까지 박탈 당하는 사태를 노보루의 그 당시 기억에 대한 아련한 감정이 이 책에 담아있다.

조선인 학교에서의 원하지 않는 퇴직 후 노보루에게 있어 조선인학교의 5년 후 일본 학교의 전근은 다시금 교사 생활을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인학교에서의 5년은 그를 완전히 일본인으로 놔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일본 학교의 조직이 그를 이방인으로 간주했을 때 그는 조선어 공부에 열중했다. 다만 조선인 학교의 퇴직 후 전문적인 조선어 공부 및 학문적 결과를 내놓기 힘들었지만 그는 조선문학 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계속적인 조선인 학생에 대한 교육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난 노보루가 5년 동안 도립 조선인 학교에서 근무하며, 노보루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조선인들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노보루가 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일본 당국자들과 이견을 극복해가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노보루와 뜻을 같이 했던 그들의 투쟁은 단지 조선인 학교 내에서의 작은 저항이 아니었다. 모든 행동들은 조선의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더 큰 싸움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선생님의 활동 상을 이 책을 통해  느끼면서 노보루와 그들의 동료의 강인함을 깨달았다.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느낀 점이 많다. 비록 이 책에서 그 당시 역사적 사실을 획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당시 그들이 갖고 있는 불안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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