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아범의 산업보건이야기

6일전쟁 SIX DAYS - 제레미 보엔지음-KODEF안보총서 <3> 본문

서평

6일전쟁 SIX DAYS - 제레미 보엔지음-KODEF안보총서 <3>

나연아범 2024. 2. 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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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 글에 이집트 이야기를 해보았다면 6일 전쟁 이전에 요르단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요르단도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과 피땀나게 전투를 벌였던 나라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요르단왕 압둘라 1세는 이스라엘 건국 전 유대 지도자를 만나 팔레스타인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쌍수를 들고 말렸다고 한다.

여기서 요르단 창국의 아버지인 압둘라1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압둘라1세(1882년 2월 – 1951년 7월)는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함께 아랍 반란의 중요인물로 등장했다. 그리고 영국보호형 트란스요르단의 지도자로 등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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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당시 지역 토후국에 불과했던 세력을 뛰어난 외교력으로 영국과의 정치적 협력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아랍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중요한 정치적 자리에 올라 후에 요르단이 되는 아버지 토후국과 오스만 투르크 사이의 정치적 중계자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영국과의 외교적 협력 관계를 중히 여겨 그 당시 그 지역 영국 식민 장관이었던 허버트 키치너와 잡은 왕래도 행하였다. 이러한 외교적 관계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을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진주해 있던 정규군이었던 오스만 3000여명의 군사와 75mm 크르푸 포 (75mm Krupp gun) 으로 무장하였다.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되었던 포이지만 그 당시 주를 이루던 청동제 대포가 아닌 강철로 주조하여 연속적인 운용에도 견고히 사용할 수 있었던 그 당시 주류를 이루던 대포였다.

하지만 변변한 무기도 없이 인적 자원으로 구성이 대부분이었던 압둘라의 부족원들은 오스만투르크를 무찌른다는 의욕이 강했기에 오스만 투르크의 정규군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원들을 도와주는 이집트로부터 포병화력의 도움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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