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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 일본군의 89식 중전차의 짦은 활약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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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 일본군의 89식 중전차의 짦은 활약상

나연아범 2025. 2. 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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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전쟁
1945년 종전 이듬해부터 시작된 국공 내전과 더불어 20세기 전반기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중일전쟁. 이 전쟁은 중일 전쟁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모든 것을 걸고 맞붙은 진검 승부이자 1백만 이상의 병력이 맞붙는 대규모 전투만 수차례에 달하는 거대한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왜 중국을 침략하고자 했는가? 그럼에도 일본은 왜 중국을 이기지 못했는가?『중일전쟁』은 17년간의 장제스와 국민 정부, 중국군의 불굴의 항전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
권성욱
출판
미지북스
출판일
2015.02.10

https://youtu.be/lXlPCbAcWAY?si=YzPs8AjfsXCsmW3t

구(舊)일본군이 전차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차의 전술적 효과를 목격한 것과 이후 일본의 군사 현대화를 추진하려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전차를 처음 실전에 투입하였고, 참호전에서 전차가 보병을 지원하며 강력한 돌파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군 시찰단은 이를 관찰하며 새로운 군사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참관은 일본이 서양의 군사 기술과 전술을 분석하고 이를 자국의 군사 체계에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본은 영국 마크 IV 전차를 수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 전차 개발을 시작했다. 또한, 유럽 전선에서의 참관은 일본군이 현대 전쟁에 대비하는 데 중요한 학습 자료가 되었다.

일본군 지휘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식 군사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전차와 같은 신무기 역시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당시의 열강들과의 군사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일본군은 시베리아 개입 전쟁(1918~1922) 중 넓은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전차와 같은 기계화 병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러시아 내전에서 적의 기동력을 제압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 영국 등 군사 강국들과 경쟁하며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전차를 포함한 새로운 군사 기술의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1919년,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마크 IV 전차를 연구를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체의 전차 개발을 모색했다. 이후 1925년에는 프랑스 르노 FT 전차도 도입하여 실험을 진행하며 전차 기술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계기들을 바탕으로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와 독자적인 전차 개발에 착수하였고, 이는 이후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의 근대적인 기갑부대 형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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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근대적인 전차인

일본군의 Type 89 중전차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개발 및 사용된 전차이다. "Otsu"는 일본어로 "乙"를 의미하며, 이는 Type 89의 개량형을 가리킨다. Type 89 중전차는 일본 제국 육군의 주력 전차 중 하나로, 중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다. Type 89 중전차는 일본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최초의 전차 중 하나로, 영국의 비커스 전차에서 영향을 받았다. 1929년에 채택되었으며, 1930년대 초반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무장

- 주포: 57mm Type 90 주포를 장착했다.

- 기관총: 2정의 6.5mm Type 91 기관총을 장착했다.

장갑

최대 장갑 두께는 17mm로, 당시 기준으로는 적절한 수준이었지만, 후기 전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았다.(대보병용 전차)

엔진

초기형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지만, Otsu 개량형은 디젤 엔진을 도입해 연료 효율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최고 속도는 약 26km/h로, 당시 기준으로는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89식 중전차는 일본의 전차 개발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일본이 독자적인 전차 설계 및 생산 능력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초기 성공을 거두었지만, 기술적 한계와 더 현대적인 전차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도태되었다.

Type 89 중전차는 일본의 군사 기술 발전과 전차 전술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군사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https://youtu.be/vYj4Ll4RWnk?si=pC1wn4r51kyl7kz-

 

89식 전차는 위의 동영상처럼 그 당시 중국의 담벼락 및 오래된 건축물을 무쌍을 찍듯 다 부수고 다녔다 (대담벽용 전차)

89식 중전차의 데뷔 전투는 1931년 만주사변(만주 사건) 때이었다. 이 전차는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하면서 중국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후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89식 중전차는 다시 중국 전선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다만 만주사변 당시 당사국이었던 동북 군벌 장학량의 군대는 전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1937년 중일전쟁 시 장개석의 국민당 군도

- Vickers 6-Ton 전차* 20대 정도

- 소량의 T-26 전차

- **CV-33/35 탱켓**: 이탈리아에서 도입한 초소형 전차(탱켓)로, 기관총만 장착된 경장갑 차량이었고 총 수십 대 남짓이었다.

https://youtu.be/n0FjVp_nWGw?si=3sojX7hmpxdYOwpQ

국민당군과 일본군은 상하이 전투(1937년)에서 서로만의 전차전(?)을 치렀는데 국민당군은 Vickers 6-Ton 전차와 CV-33 탱켓을 상하이 전투에 투입했지만, "전차 대 전차"의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국민당군의 전차는 보병 지원용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일본군의 전차는 기동 전과 방어선 돌파에 주력했다. 이 전투는 국민당군의 전차 운용 능력과 중화기의 열세를 드러낸 사례로, 중일 전쟁 초기 국민당군의 고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고 한다

난징 전투(1937년)에서도 국민당군의 전차 부대는 난징 방어전에서도 사용되었지만,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기동력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허나 이런 일본의 전차 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몬한 전투(1939년)에서 일본군은 89식 중전차를 사용했다. 노몬한 전투는 일본과 소련 간의 국경 분쟁으로, 일본 관동군과 소련-몽골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89식 중전차를 포함한 여러 전차를 투입했지만, 소련군의 T-26 및 BT 전차 등에 비해 성능이 열세였다.

https://youtu.be/mNAevrg_l_M?si=ZhmAfYlbkjbLgHGW

89식 중전차는 당시 일본군의 주력 전차 중 하나였지만, 기동성과 화력, 장갑 방어력에서 소련 전차에 비해 뒤처졌다. 또한, 노몬한 지역의 지형과 소련군의 전술적 우위로 인해 일본군은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전투는 일본군에게 전차 전술과 장비의 현대화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노몬한 전투에서 89식 중전차가 사용되었지만, 전투 결과는 일본군에게 불리했으며, 이는 일본의 전차 개발과 전술에 대한 재고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고 89식 중전차의 짧은 만개(滿開)는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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