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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아범의 산업보건이야기
<안향>고려 시대 유학의 선구자와 조선 당쟁 정치에 끼친 그의 영향 <ft, 21세기 북스 이한우의 조선 당쟁사> 본문
- 저자
- 이한우
- 출판
- 21세기북스
- 출판일
- 2025.04.02
https://youtu.be/MJnromBupnQ?si=ZWvk4v-P0FjHP3JD
요즘같이 좌익 우익 아니 보수냐 진보냐 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나는 결국 조선 시대의 당쟁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이한우 선생님의 조선 당쟁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지식에 대한 갈음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 시간에 다 보지는 못했다.
하나 이한우 선생님은 이 책의 시작을 고려 시대 인물인 안향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오늘은 이 블로그를 통해 안향이란 인물을 살펴보고 이 책을 좀 더 탐독함으로써 당쟁에 대한 조각조각 하나를 맞추어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고자 한다.
<하기의 내용은 상기 책의 안향에 대한 평가와 다를 수 있는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려 말의 지식인이자 주자학의 전파자 안향은 1243년(고종 30년)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순천이며, 자는 중허(仲虛), 호는 회헌(晦軒)이다. 고려 말은 원나라의 간섭이 강해지며 정치적 혼란이 심화된 시기로, 불교 중심의 사상적 풍토 속에서 유학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안향은 이러한 환경에서 유학, 특히 주자학(朱子學)을 체계적으로 수용하며 고려 지식사회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1.1. 학문적 여정과 원나라 유학
안향은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고려의 국학에서 수학하며 전통적인 유학을 익혔으나, 결정적인 전환점은 원나라와의 교류였다. 고려는 원의 속국으로서 원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했고, 안향은 1260년대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 시기 그는 원나라로 자들과 교류하며 주자학의 원전을 접했고, 주희(朱熹)의 사상을 깊이 연구했다. 특히 주희의 『사서집주(四書集註)』와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고려에 들여와 이를 바탕으로 학문을 정립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돌아온 뒤 성균관을 중심으로 주자학을 가르쳤다. 그는 기존의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한 고려 지식인들에게 주자학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을 설파하며, 유학이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노력은 고려 말 이색, 정몽주 등 신진 유학자들에게 계승되어 조선 건국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1.2. 정치적 활동과 한계
안향은 학자이자 관료로서 고려 조정에서 활동했다. 그는 성균관 대사성, 좌사간, 우사간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교육과 행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원나라의 간섭과 무신정권의 잔재로 인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안향은 유학을 통해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으나, 당시 고려의 정치적 현실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녹록지 않았다. 그는 1306년(원종 2년) 6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대에 큰 울림을 주었다.
2. 안향의 철학
안향의 철학은 주자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주자학은 송나라 주희가 체계화한 유학의 한 갈래로, 이기론(理氣論), 심성론(心性論),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천적 윤리를 강조한다. 안향은 이를 고려의 맥락에 맞게 수용하며 다음과 같은 핵심 사상을 전파했다.
2.1. 이기론과 우주론적 질서
주자학의 이기론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이(理)’와 그것을 구성하는 ‘기(氣)’의 관계를 설명한다. 안향은 이기론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질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 했으며,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 대비되는 합리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는 ‘이’가 모든 존재의 본질적 질서라고 보았고, 인간은 이를 깨달아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2. 심성론과 도덕적 자아
안향은 주자학의 심성론을 통해 인간의 본성(性)이 선(善) 하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욕망(氣)에 휘둘리지 않고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학문과 수양을 통해 ‘심(心)’을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는 기초가 되었다
2.3. 실천적 윤리와 왕도정치
안향은 주자학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며, 군주와 신하가 덕(德)을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어』와 『맹자』를 중심으로 仁(인)과 義(의)를 실천하는 정치가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이는 고려 말의 부패한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새로운 국가 이념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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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시대 당쟁 정치의 배경
조선시대(1392~1897)는 유학, 특히 주자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나라였다. 그러나 주자학의 엄격한 이념적 틀은 정치적 갈등의 씨앗이 되었고, 이는 당쟁(黨爭)이라는 극심한 붕당정치로 나타났다. 당쟁은 사림파의 등장과 함께 16세기부터 본격화되었으며, 동인·서인, 남인·노론 등의 파벌로 나뉘어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을 벌였다.
3.1. 당쟁의 기원
당쟁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철학적·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사림파는 주자학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추구했으나, 주자학 해석의 차이와 지역적·가문적 연대가 결합되며 파벌로 분화되었다. 예를 들어, 서인은 이황(퇴계)의 학문을 계승하며 심성론과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했고, 동인은 이이(율곡)의 실용적 유학을 따르며 현실적 개혁을 중시했다.
3.2. 당쟁의 양상
당쟁은 1575년 동서분당을 시작으로 17~18세기에 걸쳐 점차 심화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사화(士禍), 인조반정(1623), 예송논쟁(1659, 1674) 등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학자와 관료가 숙청되었다. 당쟁은 학문적 논쟁을 넘어 정적 제거와 권력 독점으로 변질되며 조선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4. 안향의 철학이 조선 당쟁에 미친 영향
안향이 고려에 도입한 주자학은 조선 건국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고, 그의 철학은 당쟁 정치의 형성과 전개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4.1. 주자학의 국가 이념화와 당쟁의 철학적 기초
안향은 주자학을 체계적으로 전파하며 유학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여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고, 이는 당쟁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주자학의 엄격한 도덕률과 이념적 순수성은 사림파의 정치적 담론을 형성했으며, 각 파벌은 자신들이 주자학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배척했다. 예를 들어, 서인은 이황의 학문을 정통으로 내세웠고, 동인은 이이의 실용성을 강조하며 대립했다. 안향이 주자학의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면, 조선의 당쟁은 지금과 같은 철학적 색채를 띠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4.2. 심성론과 파벌 간 갈등
안향이 강조한 심성론은 조선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심성론은 인간 본성의 선함과 수양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이는 당쟁에서 파벌 간 논쟁의 핵심이 되었다. 서인은 심(心)의 내적 수양을 중시하며 철학적 깊이를 강조했고, 동인은 치인(治人)의 실천적 측면을 앞세웠다. 이러한 학문적 차이는 예송논쟁과 같은 사건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예송논쟁은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례를 둘러싼 논쟁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주자학의 예학(禮學) 해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안향의 심성론은 이러한 논쟁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으며, 그의 철학이 조선 학자들에게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와 갈등을 유도한 셈이다.
4.3. 왕도정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안향은 왕도정치를 통해 백성의 안녕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조선의 당쟁은 이 이상을 실현하기보다는 파벌 간 권력 다툼으로 변질되었다. 각 파벌은 주자학의 덕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가문과 지역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상대를 비판했다. 이는 안향의 이상이 현실 정치에서 왜곡된 결과였다. 예를 들어,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정책 차이를 넘어 개인적 원한과 권력욕으로 확대되었고, 이는 안향이 꿈꾼 조화로운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4.4. 안향의 제자들과 조선 유학
안향의 학문은 이색, 정몽주, 길재 등 고려 말 유학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이들은 조선 초 성리학의 기틀을 닦았고, 그 후손들은 사림파로 성장하며 당쟁의 주역이 되었다. 예를 들어, 길재의 학통은 조선 중기의 서인 학자들에게 이어졌으며, 이는 당쟁의 한 축을 형성했다. 안향의 주자학이 없었다면 조선의 사림파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쟁의 양상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5. 안향의 유산에 대한 평가
안향은 고려 말 주자학을 도입하며 유학의 부흥을 이끈 선구자였다. 그의 철학은 조선의 국가 이념과 학문적 기반을 형성했지만, 동시에 당쟁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안향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주자학의 엄격한 이념성이 조선의 정치적·사회적 현실과 충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주자학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했지만, 그 순수성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파벌 갈등을 낳았고, 이는 조선 사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안향의 업적은 당쟁의 부정적 측면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의 주자학은 조선의 교육, 예학, 행정 체계를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동아시아 유학의 흐름 속에서 고려와 조선의 지적 위상을 높였다. 또한 그의 철학은 후대 학자들에게 끊임없는 성찰과 논쟁을 유도하며 한국 유학의 깊이를 더했다.
조선 당쟁의 씨앗이자 거울 안향은 고려 말 주자학을 통해 새로운 사상적 지평을 열었고, 이는 조선시대의 정치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기론, 심성론, 왕도정치의 이상은 조선 건국의 토대가 되었지만, 주자학의 엄격한 이념성은 당쟁이라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당쟁은 안향의 철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변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오늘날 안향의 유산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그의 이상이 지닌 고결함과 그것이 현실에서 마주한 한계를 함께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안향의 삶과 철학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념과 현실의 조화를 고민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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